Special Issue : 코로나19와 이동

코로나19 시대의
문화생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총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쥘 때만 해도 한국 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청사진을 그리며 2020년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충무로의 기대작들은 줄줄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OTT(Over The Top: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방향을 틀었고 관객들은 영화관이 아니라 집에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일이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도 스크린이 주는 감동을 모니터가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극장이 그리웠던 사람들은 집콕 대신 차콕을 택하며 자동차 극장으로 향했다. 방구석 1열을 넘어 자동차 1열을 찾아 나선 T맵 사용자들의 코로나19 시대의 문화생활을 살펴보자.

2019 vs 2020 상반기
전국 극장 관객 수 추이

11,000
9,000
7,000
5,000
3,000

전국 극장 관객 수

-70.3%

10,932 만 명

(2019년 상반기)

3,241 만 명

(2020년 상반기)

* 관객 수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상반기 한국 영화 결산 자료

어쩌다 보니 영화의 미래

장기전으로 접어든 코로나19 사태로 여러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중 영화 산업은 여행 산업과 더불어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하나로 전에 없던 불황을 겪고 있다. 2020년 상반기 전체 극장 관객 수는 전년도 대비 70.3% 감소한 3,241만 명, 전체 극장 매출액은 70.6% 감소한 2,738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 수치는 2005년 이후 최저 관객 수 이자 최저 매출액이다. 2004년, 처음으로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이 구축되었음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집계 이후 가장 큰 보릿고개를 만난 것이다. 이에 영화계는 개봉을 미루며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자동차 극장은 OTT 플랫폼과 더불어 코로나19 시대의 대표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시의적절했고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자 자동차 극장은 영화 감상은 물론 다양한 문화 감상 공간으로서 부상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희비가 교차한 멀티플렉스와 자동차 극장

2020년, 멀티플렉스와 자동차 극장으로 향한 T맵의 이동 데이터를 살펴보면 자동차 극장의 약진이 눈에 띈다. 확진자 수가 많지 않았던 1월에는 성수기로 꼽히는 설 연휴 덕분에 멀티플렉스로 향한 이동량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2월을 기점으로 2019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자동차 극장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던 2월과 3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이동량이 100% 이상 증가했다. 2019년 자료를 토대로 자동차 극장이 가장 붐볐던 시기를 분석해 보면 블록버스터 규모의 영화가 줄이어 개봉하는 여름 시즌이 성수기였다. 추위 때문에 야외 활동이 어려운 겨울에도 자동차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했고 대체로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는 인기가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2020년은 시작부터 달랐다. 자동차 극장으로 떠난 T맵 사용자들의 이동량이 연일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의 자동차 극장이 전국에서 가장 문전성시를 이뤘다. 2월 25일, 대구경북 지역이 감염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대구경북 지역의 멀티플렉스 극장 11개 지점이 임시 휴업을 선언했고 하루에도 많게는 700명까지 확진자가 나왔던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의 경각심이 더해져 자동차 극장의 때아닌 호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4월과 5월에는 자동차 극장의 상승 그래프가 꺾였지만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난 6월에는 자동차 극장으로 향하는 이동량도 함께 상승하며 코로나19와 자동차 극장의 상관 관계를 증명했다. 반면 멀티플렉스는 자동차 극장의 인기가 주춤했던 4월과 5월을 기점으로 서서히 관객 수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2019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그러나 2020년 상반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6월 24일에 영화 <#살아있다 >가 개봉했고 일일 관객 수 40만 명을 돌파하며 영화 업계가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하반기에는 다수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기다릴 것이라고 희망해 본다. 사람들로 가득한 극장에서 영화의 즐거움을 공유하던 즐거움을 당장은 누릴 수 없겠지만 곳곳에서 방역에 힘쓰고 있는 만큼 2020년 하반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영화관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전국
자동차 극장 vs 멀티플렉스 수요 비교

코로나19 확산 시기

+165% 자동차 극장 -86% 멀티플렉스
2020. 1. 2020. 3. +165% 자동차 극장 멀티플렉스 -86%

* 2020. 1. ~ 2020. 3.   |   길안내 시작 수

2020년, 자동차 극장 진화의 해

팬데믹 선언 이후,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매우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활용해 드라이브 스루 형식의 선별 진료소가 운영되기도 했고 비대면 서비스를 실천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동차가 있었다. 자동차 극장 역시 비대면 서비스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고 이제는 새로운 문화체험 공간으로 진화할 준비를 마쳤다. 강원도는 가수 이승철과 함께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개최했고 현대자동차 역시 일산 킨텍스에서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진행했다. 번호판을 바라보며 무대에 선 가수에게도 자동차 안에 있는 관객들에게도 낯선 경험이었지만 박수는 와이퍼로, 환호는 깜박이로 대신하는 등 나름의 소통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자동차 극장을 활용한 이벤트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자동차가 출입할 수 없었던 비행기 활주로를 자동차 극장으로 개방했다. 에어로 시네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 행사는 빌뉴스 국제 영화제에서 진행한 이벤트 중 하나였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행기 운항이 줄어들자 침체에 빠진 항공계와 영화제에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없었던 영화계 관계자들이 힘을 합쳐 마련한 자리였다. 덴마크에서도 무관중 경기로 아쉬워하는 축구 팬들을 위해 자동차 극장에서 단체 경기 관람을 추진하기도 했다. 일부 열성 팬들은 응원 도구로 장식한 자동차 안에서 열띤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영화와 콘서트, 스포츠 관람까지 자동차 안에서 즐기는 문화생활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는 코로나19의 종식까지 마냥 답답함을 호소만 하기보다는 자동차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하는 것이 코로나19 시대를 보내는 가장 현명한 대처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