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희로애락

젠트리피케이션의
빛과 그림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1964년의 런던이었다. 낙후된 주거 지역에 중산 계급(Gentry)이 유입되면서 개발이 이루어지자 원래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런던 밖으로 내몰리게 된 현상을 지리학자 루스 글래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정의한 것이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구도심이 재개발될 때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서울의 가로수길, 삼청동, 경리단길 같은 곳에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거리의 개성을 만들어온 원주민이 이탈하는 현상이 반복되자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T맵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망리단길, 연남동, 익선동 등 서울의 인기 골목들을 살펴보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았다.

젠트리피케이션 발생과정

데이트나 모임 장소를 결정할 때 SNS의 해시태그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핫플레이스만 검색해도 예쁜 카페와 맛집에 관한 정보가 잔뜩 쏟아지고 함께 뜨는 동네 이름을 참고하면 볼거리가 많은 거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경리단길, 연남동 등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던 거리들이 핫플레이스 태그를 타고 등장하는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뜨는 동네와 지는 동네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그저 트렌드, 취향의 변화라고 간단하게 정리하기에는 꽤나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다. 원주민, 건물주, 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핫플레이스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대체로 낙후된 구도심의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이 들어와 개성 있는 문화 거리를 형성하면서 시작된다. SNS에 입소문이 나고 유동 인구가 증가하면 대규모 상업 자본이 침투하면서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이 두 번째 수순이다. 본래 터를 잡고 살던 원주민과 골목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에 지쳐 떠나게 되고 지역의 문화는 점차 퇴색하면서 상권 역시 죽어가는데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의 마지막 단계다. 삼청동과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익선동과 성수동까지 모두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 2015. 1. ~ 2019. 12.
* 한국감정원   |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 2015. 1. ~ 2019. 12.   |   한국감정원   |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뜨는 동네, 지는 동네

2014년부터 6년간 서울에서 화제가 되었던 8개의 골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 살펴보았다. 각 골목을 구성하는 건물들 중 소상공인들이 주로 입점해 있는 중소형 건물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을 제외하고 분석을 진행했다. 먼저 삼청동의 경우, 서울에서 공시지가가 낮은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였지만 저렴한 임대료에 이끌린 예술가들과 수공업자들이 거리의 분위기를 바꾸면서 점점 인기 골목으로 떠올랐다. 북촌과 인사동이 가까워 상권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하나둘 떠나고 대형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삼청동만의 분위기가 사라진 탓이다. 삼청동의 인기는 경리단길과 가로수길이 이어받았다.
이태원과 인접한 경리단길은 이국적이고 독특한 가게들이 상권을 형성하면서 방송에도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고 가로수길 역시 의류 편집숍과 디자이너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강남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부상했었다. 그러나 현재 두 곳에서는 예전과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경리단길은 고질적인 주차난을 해결하지 못했고 가로수길은 대형 브랜드의 마케팅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2019년 기준, 경리단길은 상가 공실률이 20%를 넘어섰는데 이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치고 가로수길 역시 공실률이 11.3%를 기록하는 중이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신생 가게가 3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절반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5년 동안 생존하는 가게는 38.1%에 불과했는데 이는 각 상권이 인기를 유지하는 기간과 거의 흡사하다. 삼청동, 경리단길, 가로수길 모두 5년 사이에 인기 바통을 한 번씩 주고받았고 자본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울 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난 골목 8곳

길안내 시작 수 (진한 색일수록 시작 수 높음 ) 2014. 1. 2019. 12.
망원동 경리단길 삼청동 2014. 1. 2019. 12. 송리단길 연남동 가로수길 익선동 성수동 길안내 시작 수 (진한 색일수록 시작 수 높음 )

* 2014. 1. ~ 2019. 12.

새로운 핫플레이스의 등장

핫플레이스 타이틀은 연남동과 망원동 일대로 넘어왔다. 젊은 예술가의 작업실과 소규모 상점들이 홍대와 합정의 값비싼 임대료로 인해 연남동과 망원동 일대로 밀려났는데, 2016년 경의선숲길 조성과 함께 연남동은 연트럴파크라는 별칭을 얻으며 SNS의 성지로 떠올랐다. 망원동 역시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경리단길의 네이밍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아 대세 골목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송리단길 역시 경리단길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석촌호수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빌라 골목이지만 곳곳에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며 방이동 먹자골목과 함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롯데타워가 가까워 쇼핑 인구까지 방문하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장소다. 핫플레이스는 SNS 업로드용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기 장소를 방문하고 사진을 남기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면서 한 번 갔던 장소를 반복해서 방문하기보다는 새로운 장소 찾기에 더 집중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다. 익선동과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것도 SNS 인증 열풍에서 비롯되었다. 한옥을 개조한 공간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익선동 그리고 공장과 창고를 개조한 성수동은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에는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았던 동네가 갑자기 상업 지구로 변신해 고통받는 익선동 주민들이 있고 임대료가 올라 공장을 외곽으로 옮겨야 하는 사장님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 이상 익선동과 성수동을 찾지 않는다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핫플레이스, 뜨는 동네라는 이름에 가려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여전히 서울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